PeakerPeaker Plan
해발고도는 낮은데, 몸은 에베레스트보다 더 힘들다

Peaker

해발고도는 낮은데, 몸은 에베레스트보다 더 힘들다

Wikimedia Commons(카티시나에서 바라본 데날리) 데날리의 높이는 6190m다. 에베레스트(8849m)보다 2600m 넘게 낮다는 뜻이니, 언뜻 보면 훨씬 만만한 산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 산을 오른 사람들은 종종 데날리가 에베레스트보다 훨씬 힘들었다고 말한다. 이유는 위도에 있다. 지구는 완전한 구가 아니라 적도 쪽이 부풀고 극지방 쪽이 눌린 타원체라서, 같은 고도라도 극지방에 가까울수록 대기가 더 얇다. 북위 63도에 자리한 데날리는 적도 근처의 8000m급 봉우리와 비슷한 수준으로 공기가 희박하다. 숫자로 적힌 고도보다 몸이 실제로 느끼는 고도가 훨씬 높다는 뜻이다. 여기에 극한의 추위까지 더해진다. 정상 부근 체감온도는 영하 80도 아래로 떨어진 기록이 있고, 강풍까지 겹치면 순식간에 동상과 저체온증으로 이어진다. 특히 정상 직전 하산 구간인 데날리 패스는 가장 많은 사망자가 나온 지점으로 꼽힌다. 좁고 가파른 이 구간에서 발을 헛디디면 수백 미터를 미끄러져 내려가는데, 지금까지 이 산에서 목숨을 잃은 등반가는 130명이 넘는다. Wikimedia Commons(1913년의 월터 하퍼) 이 혹독한 산을 인류가 처음 완전히 등정한 건 1913년 6월이었다. 허드슨 스턱 목사가 이끈 원정대 네 명 중, 정상을 가장 먼저 밟은 사람은 원정대장이 아니라 월터 하퍼라는 스무 살 청년이었다. 그는 알래스카 원주민 애서배스카족 출신으로, 원정대의 길잡이이자 통역을 맡고 있었다. 자신들의 땅에서 가장 높은 곳에 처음 선 사람이, 정작 그 땅의 원주민이었던 셈이다. Wikimedia Commons(1906년, 알래스카의 프레더릭 쿡) 이보다 앞선 1906년에도 정상에 올랐다고 주장한 탐험가가 있었다. 프레더릭 쿡은 정상에서 찍었다는 사진까지 공개하며 최초 등정자를 자처했지만, 훗날 그 사진 속 봉우리는 실제 정상에서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훨씬 낮은 봉우리로 밝혀졌다. 지금도 이 봉우리는 가짜 봉우리라는 뜻의 별명으로 불린다. 쿡은 이 사건 이후로도 1908년 북극점 최초 도달을 주장했다가 같은 의심을 받았다. Wikimedia Commons · Baptista Kwok(CC BY-SA 4.0, 데날리국립공원의 저녁 풍경) 매년 수백 명이 데날리 정상에 도전하지만, 실제로 정상을 밟는 사람은 절반 정도에 그친다. 나머지는 날씨나 체력, 고산병 때문에 중간에서 발길을 돌린다. 등반 시즌도 5월에서 7월 사이로 짧고, 그마저도 하루에도 몇 번씩 날씨가 급변해서 계획한 일정을 그대로 지키기가 쉽지 않다. Wikimedia Commons · David Zhang(CC BY-SA 2.0, 데날리와 헌터산) 이 산은 한국 산악사에도 깊은 흔적을 남겼다. 1977년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던 고상돈은 1979년 이 산을 하산하던 중 크레바스에 빠져 세상을 떠났다. 에베레스트보다 낮다는 숫자만 보고 방심할 수 있는 산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의 마지막 산행이 보여준다. 이 산의 이름을 둘러싼 다툼도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2015년 미국 정부는 산의 이름을 원주민 말인 데날리로 공식 변경했지만, 2025년에는 다시 매킨리로 되돌리는 행정명령이 나왔다. 하지만 숫자와 이름이 무엇이든, 이 산이 오르는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은 한결같다. 해발고도만 보고 준비하지 말 것. 데날리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떤 산은 높이보다 훨씬 많은 것을 말해준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엔 또 어떤 산 이야기를 갖고 올까.

Peaker 앱에서 이 글을 계속 읽어보세요

Peaker 앱에서 열기
해발고도는 낮은데, 몸은 에베레스트보다 더 힘들다 Peak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