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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 누가 먼저 올랐는지 아무도 모른다
Wikimedia Commons(에베레스트 전경) 지구에서 가장 높은 곳의 이름은 사실 그 산과 아무 상관이 없다. "에베레스트"는 19세기 인도 측량국장이었던 영국인 조지 에버리스트 경의 이름을 딴 것인데, 정작 이 사람은 평생 이 산을 눈으로 본 적이 없다. 정작 산 아래 살아온 사람들은 전혀 다른 이름으로 이 산을 불러왔다. 네팔에서는 "세상의 이마"라는 뜻의 사가르마타, 티베트에서는 "대지의 여신"이라는 뜻의 초모룽마. 이름 하나에도 이렇게 다른 역사가 겹쳐 있는 산이,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공식 기록상 인류가 처음 이 산 정상에 선 건 1953년 5월 29일, 뉴질랜드인 에드먼드 힐러리와 셰르파 텐징 노르가이였다. 흥미로운 건 두 사람이 죽을 때까지 "누가 먼저 발을 디뎠는지" 정확히 밝히지 않았다는 점이다. 텐징은 자서전에서 힐러리가 반 걸음 먼저였다고 썼고, 힐러리도 비슷하게 답했지만, 실제로는 두 사람이 한 몸처럼 로프에 묶인 채 함께 올라섰다는 게 더 정확한 설명에 가깝다. 정상에 오른 뒤 힐러리가 텐징의 사진을 찍었는데, 정작 텐징이 카메라를 쓸 줄 몰라서 힐러리 본인의 정상 사진은 세상에 남아있지 않다. Wikimedia Commons(1953년, 에드먼드 힐러리와 텐징 노르가이) 그런데 여기서 진짜 미스터리가 시작된다. 1953년보다 29년 앞선 1924년, 영국의 조지 맬러리와 앤드루 어빈이 이미 정상 등정을 시도했었다. 두 사람은 정상까지 채 250m도 남지 않은 지점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된 뒤 그대로 사라졌다. 맬러리는 산에 오르는 이유를 묻는 기자에게 "그저 그곳에 있으니까"라는,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대답을 남긴 사람이다. 1999년, 실종된 지 75년 만에 맬러리의 시신이 북쪽 사면에서 발견됐다. 하지만 정상에 올랐다는 걸 증명해줄 카메라는 끝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도 등반사에서는 진지하게 묻는다. 인류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을 밟은 건 어쩌면 힐러리가 아니라, 이름도 카메라도 눈 속에 묻힌 맬러리와 어빈이었을지 모른다고. Wikimedia Commons(정상 부근 힐러리 스텝)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산은 훨씬 정직해진다. 해발 8000m를 넘어서면 이른바 "데스 존"이 시작되는데, 공기 중 산소가 평지의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져서 사람 몸이 서서히 죽어가는 속도로 상하는 구간이다. 이 구간에서 숨진 등반가는 구조는커녕 시신 수습조차 거의 불가능하다. 한 사람을 옮기려면 여러 명의 목숨을 다시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에베레스트에는 지금도 약 200구의 시신이 그대로 남아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중 초록색 등산화를 신은 한 시신은 오랫동안 "그린 부츠"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정상을 향하던 많은 등반가들에게 무언의 이정표이자 경고가 되어왔다. Wikimedia Commons(쿰부 아이스폴) 요즘 에베레스트를 검색하면 정상 능선에 형형색색의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는 사진을 심심찮게 보게 된다. 한 사람당 원정 비용이 수천만 원에 이르는데도 매년 수백 명이 셰르파의 도움을 받아 정상에 도전한다. 날씨가 좋은 짧은 기간에 등반객이 몰리면서, 정상 바로 아래 좁은 능선에서 몇 시간씩 줄을 서서 기다리다 저체온증으로 목숨을 잃는 경우까지 생겼다. 한때 목숨을 걸고 인류의 한계에 도전하던 곳이, 지금은 돈과 줄서기가 함께 얽힌 공간이 됐다는 게 아이러니하다면 아이러니다. Wikimedia Commons(티베트 쪽에서 본 에베레스트 북벽) 한국 산악인들에게도 에베레스트는 각별하다. 엄홍길 대장은 히말라야 8000m급 14좌를 모두 오른 몇 안 되는 산악인 중 한 명인데, 정작 가장 유명한 순간은 정상 등정이 아니라 하산 중 조난된 동료들을 수습하러 다시 데스 존으로 올라간 일이다. 2005년, 그는 "휴먼 원정대"를 꾸려 에베레스트 하산 중 목숨을 잃은 박무택, 백준호, 장민 대원의 흔적을 찾아 다시 산에 올랐다. 시신을 끝까지 옮겨 내려올 수는 없었지만, 8600m 지점에 돌무덤을 쌓아 동료를 그 자리에 묻어주고 내려왔다. 정상에 서는 것보다, 그곳에서 무엇을 두고 내려오는지가 더 오래 기억되는 순간이었다. 에베레스트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남는 건 높이 자체가 아니라, 그 앞에서 사람들이 내린 선택들이다. 이름을 남기지 않은 텐징의 겸손, 카메라 하나 때문에 100년 가까이 풀리지 않는 맬러리의 수수께끼, 동료를 데리러 다시 데스 존으로 올라간 엄홍길의 결정. 우리가 오르는 산은 8848m는커녕 그 10분의 1도 안 될 때가 많지만, 그 안에도 각자의 선택과 이야기가 쌓인다. 오늘 다녀온 산행이 별거 아니었다고 느껴져도, 기록으로 남겨두면 언젠가 그 산에서의 선택이 스스로에게도 하나의 이야기가 될 거다. 다음 산행은 어디로 잡아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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