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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2, 이름을 빼앗겼던 사람들의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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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2, 이름을 빼앗겼던 사람들의 산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인데, 이 산에는 아직도 다들 부르는 진짜 이름이 없다. 1856년, 영국 측량기사 T.G. 몽고메리가 카라코람 산맥을 측량하다가 눈에 띈 봉우리들에 K1, K2, K3 순서로 임시 번호를 매겼다. K1은 나중에 현지 이름(마셔브룸)을 되찾았는데, K2만은 끝내 그 임시 번호가 그대로 굳어버렸다. 정작 이 산 아래 발티족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초고리(왕 중의 왕)"라 불러왔지만, 세계는 여전히 측량 도면에 적힌 코드네임으로 이 산을 기억한다. 이름조차 제대로 갖지 못한 산이라는 점에서, 지금부터 할 이야기와 묘하게 맞아떨어진다. K2 정상에 인류가 처음 선 건 1953년 에베레스트보다 딱 1년 늦은 1954년 7월 31일, 아르디토 데시오가 이끈 이탈리아 원정대의 아킬레 콤파뇨니와 리노 라체델리였다. 정상 사진도 남겼고 영상까지 촬영했으니 기록 자체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문제는 그 뒤에 가려진 이야기였다. 원정대의 젊은 대원 발터 보나티는 정상 공격조에게 마지막 산소통을 전달하는 임무를 맡았다. 약속된 캠프 위치까지 산소통을 지고 올라갔는데, 콤파뇨니가 그 사이 캠프를 훨씬 위쪽으로 옮겨버렸다. 날은 이미 저물었고, 되돌아갈 수도 없었던 보나티는 파키스탄인 짐꾼 아미르 마디와 함께 텐트도 없이 해발 8100m 부근에서 그대로 밤을 새웠다. 영하 수십 도의 노천에서 살아 내려온 것만으로도 기적이었다. 그런데 하산 후 콤파뇨니 쪽에서는 오히려 보나티가 그날 밤 산소를 몰래 훔쳐 썼다고 몰아붙였다. 보나티는 이 누명을 벗기 위해 이후 50년 가까이 소송과 인터뷰를 이어갔고, 2007년이 되어서야 이탈리아 산악회가 공식적으로 기록을 정정하고 사과했다. 정상에 오른 두 사람의 이름은 등반사에 곧바로 새겨졌지만, 정작 그 등정을 가능하게 한 사람의 이름은 반세기를 기다려야 했다. K2는 "새비지 마운틴(Savage Mountain)"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높이는 에베레스트보다 236m 낮지만, 등반가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K2를 더 두려워하는 경우가 많다. 경사가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완만한 구간 없이 가파르고, 날씨가 변덕스러워 좋은 날씨 창이 며칠 안 되는 데다, 정상 바로 아래 좁은 병목 구간(보틀넥)을 지나야만 정상에 설 수 있다. 등정에 성공한 사람 중 상당수가 하산 중 목숨을 잃을 만큼, 한때는 정상을 밟은 사람 넷 중 하나가 살아 내려오지 못한다는 통계가 나올 정도였다. 그 병목 구간이 얼마나 위험한지 가장 뼈아프게 보여준 사건이 2008년 8월 1일에 벌어졌다. 여러 나라 원정대가 동시에 정상 등정에 나섰던 날, 보틀넥 위쪽 세락(빙벽 얼음기둥)이 무너지면서 고정로프가 통째로 끊겨나갔다. 하산길을 잃은 등반가들이 밤새 조난되며 하루 만에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 K2 등반 역사상 단일 사고로는 최악의 참사였다. 이 중에는 한국 원정대원 3명도 포함돼 있었는데, 정작 그날 사고 현장에서 여러 나라 등반가들이 하산에 쓸 수 있었던 로프 상당수는 한국 원정대가 준비해 온 것이었다. 장비가 부족했던 다른 팀들까지 그 로프에 의지하면서 하산이 예상보다 지체됐고, 그 지체된 시간이 참사를 더 키웠다는 분석이 나왔다. 비극만 있었던 건 아니다. 2021년 1월 16일, K2는 히말라야·카라코람의 8000m급 14좌 중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동계 초등되지 않은 봉우리"라는 타이틀마저 내줬다. 그런데 이번 동계 초등을 이뤄낸 건 유럽이나 미국의 유명 산악인이 아니라, 니르말 푸르자를 포함한 네팔 셰르파 10명 전원으로 꾸려진 원정대였다. 그것도 정상 부근에서 다 함께 네팔 국가를 부르며 나란히 정상에 올라선 장면으로 기록됐다. 그동안 히말라야 등반사에서 셰르파는 서양 산악인의 등정을 돕는 조력자로만 기록되는 경우가 많았다. 보나티의 이름이 반세기 만에 제자리를 찾았듯, 이 동계 초등은 늘 남을 돕던 이들이 마침내 자기 이름으로 역사에 새겨진 순간이라는 점에서 K2의 오랜 이야기와 겹쳐 보인다. K2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이 산이 유명한 건 높이나 경치가 아니라 "누구의 이름으로 기록되는가"라는 질문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반세기 만에 명예를 되찾은 보나티, 로프를 나눠주고도 이름 없이 잊힐 뻔했던 여러 원정대, 마침내 자기 팀으로 첫 동계 등정을 이뤄낸 셰르파들까지. 우리가 오르는 산은 8611m는커녕 그 근처도 안 되지만, 그날 그 산을 오른 건 분명히 나 자신이었다는 걸 기록해두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아무도 안 알아줘도, 내가 기억하면 그걸로 충분한 산행도 있으니까. 다음엔 어떤 산 이야기를 갖고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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