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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리만자로, 이름을 두 번 빼앗긴 산
Wikimedia Commons · Muhammad Mahdi Karim(킬리만자로 전경) 아프리카 대륙 한가운데, 적도에서 채 400km도 안 떨어진 곳에 만년설인 산이 있다는 이야기를 유럽인들이 처음 들었을 때, 그들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1848년 독일 선교사 요하네스 레브만이 탄자니아 내륙을 여행하다 멀리서 하얗게 빛나는 봉우리를 보고 유럽에 보고했지만, 왕립지리학회조차 적도 근처에 눈이 있을 리 없다며 그의 보고를 몇 년이나 의심했다. 훗날 그 산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게 확인되고 나서도, 정작 이름의 뜻은 분명하지 않았다. 차가족 말로는 "등반할 수 없는 산"이라는 뜻이라 하고, 스와힐리어로는 "위대한 산" 또는 "대상(隊商)의 산"이라는 뜻이라 한다. 정작 이 산 아래에서 몇 대째 살아온 차가족 사람들에게는, 산 전체를 부르는 이름 자체가 없다. 정상 부근의 두 봉우리(키보와 마웬지)만 따로 구분해서 부를 뿐이다. 지금 세계가 부르는 이 이름은, 어쩌면 처음부터 이 산의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로부터 41년 뒤인 1889년 10월 6일, 독일의 지리학자 한스 마이어와 오스트리아의 산악인 루드비히 푸르첼러가 마침내 정상에 올라섰다. 유럽인으로서는 처음이었다. 마이어는 이전에도 두 차례나 도전했다가 정상을 눈앞에 두고 물러난 적이 있었는데, 세 번째 시도 만에야 성공한 것이었다. 정상에 선 마이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독일 제국의 깃발을 꽂는 것이었다. 그리고 첫 등정자의 권리를 내세워 그 자리에 이름을 붙였다. 카이저-빌헬름-슈피체, 황제 빌헬름봉이었다. 눈 덮인 아프리카의 최고점에, 한 번도 이 땅을 밟아본 적 없는 독일 황제의 이름이 새겨지는 순간이었다. Wikimedia Commons(1889년 촬영, 퍼블릭도메인 · 첫 등정 당시의 한스 마이어) 그 이름은 70년 넘게 지도와 기록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탄자니아(당시 탕가니카)가 영국의 식민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한 건 1961년의 일이었다. 그리고 독립한 지 3년이 지난 1964년, 정부는 정상의 이름을 다시 지었다. 스와힐리어로 "자유"를 뜻하는 우후루(Uhuru)를 따서, 우후루피크. 황제의 이름은 그렇게 자유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산꼭대기 하나에 식민 지배의 시작과 끝이 통째로 새겨진 셈이다. 지금도 킬리만자로 정상에 오른 사람들은 "우후루피크, 아프리카 최고점, 해발 5895m"라 적힌 표지판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다. 그 표지판을 읽는 사람 중 얼마나 많은 이가 이 이름 뒤에 숨은 이야기를 알고 있을지는 모르겠다. Wikimedia Commons(퍼블릭도메인 · 우후루피크 정상 표지판) 킬리만자로는 세계 7대륙 최고봉 중 가장 만만해 보이는 산으로 꼽힌다. 로프도 아이젠도 특별한 기술도 없이 두 발로 걸어서 오를 수 있는 몇 안 되는 대륙 최고봉이라, 매년 수만 명이 "누구나 오를 수 있는 꿈의 산"이라는 문구에 이끌려 도전한다. 문제는 바로 그 "쉬워 보인다"는 인상이다. 정상은 해발 5895m로,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보다도 높은 고도다. 며칠 만에 고도를 급격히 올리는 일반적인 등반 일정 탓에 고산병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드물지 않고, 해마다 몇 명씩은 그 산에서 끝내 내려오지 못한다. 걸어서 오를 수 있다는 것과, 안전하게 오를 수 있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헤밍웨이는 1936년 단편소설 "킬리만자로의 눈"에서, 만년설 덮인 정상 부근에서 얼어붙은 채 발견됐다는 표범 이야기로 글을 열었다. 그 소설 덕분에 킬리만자로라는 이름은 만년설의 이미지와 함께 전 세계에 각인됐다. 그런데 정작 그 눈은 지금 사라지고 있다. 1912년 처음 만년설 면적을 측정했을 때에 비해, 2011년에는 이미 85% 이상이 녹아 없어졌다. 정상 부근 푸르트뱅글러 빙하는 2000년부터 2009년 사이 두께가 절반으로 줄었고, 과학자들은 이 속도라면 머지않아 킬리만자로에서 만년설을 완전히 볼 수 없게 될 거라 내다본다. 헤밍웨이가 글로 남긴 "킬리만자로의 눈"이라는 제목이, 이제는 과거형으로 읽힐 날이 머지않았다. Wikimedia Commons · Altezzatravel(CC BY-SA 4.0, 빠르게 녹고 있는 푸르트뱅글러 빙하) Wikimedia Commons · Altezzatravel(CC BY-SA 4.0, 바랑코 밸리를 지나는 트레커들) 이름조차 자기 것이 아니었던 산, 정상의 이름에 식민 지배와 독립이 함께 새겨진 산, 쉬워 보이지만 결코 만만하지 않은 산, 그리고 사라져가는 눈까지. 킬리만자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이 산이 유명한 이유가 단순히 "아프리카에서 제일 높아서"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세계 최초로 7대륙 최고봉을 완주했던 산악인 허영호도 언젠가 이 산을 그 목록의 하나로 지나갔고, 그는 지난해 세상을 떠났다. 그가 밟고 지나간 정상은 지금도 매주 수백 명의 새로운 트레커를 맞이하며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다. 우리가 오르는 산엔 황제의 이름도 식민 지배의 역사도 없지만, 그 산에 내가 붙인 의미만큼은 오롯이 내 몫이다. 다음번 산행에서 정상 표지판을 마주하게 되면, 그 이름이 어떻게 그 자리에 있게 됐는지 한 번쯤 궁금해해도 좋겠다. 다음엔 또 어떤 산 이야기를 갖고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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