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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보다 위험한 건 내려오는 길이었다
Wikimedia Commons(스위스와 이탈리아 국경에 걸친 마터호른) 마터호른은 스위스와 이탈리아 국경에 걸쳐 있는, 알프스에서 가장 눈에 익은 산이다. 높이는 4478미터로 몽블랑보다 낮지만, 정삼각형에 가까운 뾰족한 실루엣은 스위스 관광청 로고부터 초콜릿 포장지까지 어디서나 볼 수 있다. 이 모양은 우연이 아니다. 빙하가 사방에서 산을 깎아내리면서 남긴 뾰족한 봉우리, 이른바 호른형 지형의 교과서적인 사례로 꼽힌다. 한국 시청자에게도 낯설지 않은 산이다. 2013년 tvN 〈꽃보다 할배〉 프랑스·스위스 편에서 이서진과 배우들이 고르너그라트 전망대에 올라 이 산을 마주하는 장면이 나왔는데, 그때 배우 백일섭이 "파라마운트 영화사 로고에 나오는 그 산"이라고 소개했다. 사실 파라마운트 로고의 산은 마터호른이 아니라 미국 유타주의 벤 로몬드산이다. 그런데도 워낙 실루엣이 비슷해서, 스위스 관광 안내 자료에서조차 종종 파라마운트 로고 산으로 소개될 만큼 널리 퍼진 오해다. 정작 이름은 그리 낭만적이지 않다. 스위스 쪽 독일어 이름 "마터호른"은 목초지(Matte)의 봉우리(Horn)라는 뜻으로, 산 아래 펼쳐진 평범한 목장 지형에서 따온 이름이다. 이탈리아 쪽에서는 몬테 체르비노, 프랑스어권에서는 몽 세르뱅이라 부르는데, 이 프랑스어 이름도 원래 철자는 세르뱅(Servin)이었다가 18세기 한 지질학자의 오기로 첫 글자가 S에서 C로 굳어져 지금까지 그대로 쓰인다. 상징적인 실루엣과 달리, 이름 하나 제대로 통일되지 못한 산이다. Wikimedia Commons · ANKAWÜ(CC BY-SA 3.0, 에드워드 웜퍼) 1865년 7월, 영국인 산악인 에드워드 웜퍼는 벌써 여덟 번째 도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마터호른은 당시 알프스에서 마지막까지 정상을 내주지 않은 봉우리였고, 웜퍼는 그해에만 일곱 번 실패했다. 매번 그와 함께 움직인 건 이탈리아 가이드 장앙투안 카렐이었다. 둘은 몇 년째 같은 산을 두고 경쟁 아닌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런데 제르마트에 도착한 웜퍼는 카렐이 자신 몰래 이탈리아 쪽 능선으로 먼저 출발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웜퍼는 그 자리에서 서둘러 새 팀을 꾸렸다. 노련한 가이드 미셸 크로와 나이 든 가이드 페터 타우그발더 부자, 그리고 등반 경험이 사실상 없다시피 한 19세 청년 더글러스 해도우를 포함한 영국인 신사 세 명. 준비 기간은 하루도 되지 않았다. 7월 14일, 이 급조된 일곱 명은 스위스 쪽 회른리 능선을 타고 마터호른 정상에 올라섰다. 카렐의 이탈리아 팀보다 하루 앞선 순간이었다. Wikimedia Commons(귀스타브 도레가 그린 1865년 마터호른 조난 장면) 문제는 내려오는 길에서 벌어졌다. 크로가 해도우의 발을 하나씩 짚어주며 하산을 돕던 중, 해도우가 미끄러졌다. 그 충격으로 크로와 목사 찰스 허드슨, 귀족 청년 프랜시스 더글러스까지 연쇄로 끌려 내려갔다. 로프로 이어져 있던 나머지 세 명, 웜퍼와 타우그발더 부자는 순간적으로 몸을 지탱했지만, 두 팀을 잇던 로프는 그대로 끊어졌다. 네 사람은 약 1200미터 아래 마터호른 빙하까지 떨어졌다. 웜퍼는 훗날 자신의 책에서 그 순간을 "그들은 소리 없이 팔을 뻗은 채 하나씩 사라졌다"고 적었다. 크로와 해도우, 허드슨의 시신은 훗날 수습돼 제르마트 묘지에 묻혔지만, 더글러스의 시신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사고 직후, 끊어진 로프가 사실은 대원들이 스스로 살기 위해 잘라낸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조사 결과 그 혐의는 벗겨졌지만, 늙은 페터 타우그발더는 이후로도 오랫동안 그 의심을 떨쳐내지 못한 채 살아야 했다. 정상에 가장 먼저 서는 영광과, 살아 돌아오지 못하는 비극이 같은 날 함께 일어난 셈이다. 이 사고는 영국 사회에 큰 충격을 줘서, 빅토리아 여왕이 산악 등반 자체를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했을 정도였다. 산악사에서는 이 사고를 두고 유럽 최고봉들이 잇따라 초등정되던 "알피니즘의 황금기"가 끝난 순간으로 본다. Wikimedia Commons · PetOtools(CC BY-SA 4.0, 제르마트 산악인 묘지의 페터 타우그발더 묘비) 이날의 사고 이후로도 마터호른은 계속 사람의 목숨을 가져갔다. 1865년부터 지금까지 이 산에서 숨진 등반가는 500명을 훌쩍 넘는다. 제르마트 현지 집계로는 600명에 가깝다는 얘기도 있다. 유럽의 어떤 봉우리보다 많은 숫자다. 등반객 140명 중 한 명 꼴로 사고를 당한다는 통계도 있을 만큼, 지금도 결코 만만한 산이 아니다. 위험한 지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도 가장 많은 사고가 나는 구간은 정상 부근 "숄더"라 불리는 4200미터 지대 위쪽, 1865년 그날 로프가 끊어졌던 자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곳이다. 산악 가이드들 사이에서는 오르는 것보다 내려오는 게 더 위험한 산이라는 말이 정설처럼 통한다. 실제로 마터호른에서 나는 사고 대부분이 정상을 밟은 이후, 하산 도중에 일어난다. 낙석과 갑자기 몰려드는 오후 뇌우까지 겹치면, 아무리 노련한 등반가라도 방심할 틈이 없다. Wikimedia Commons · Tom N Waugh(CC BY-SA 4.0, 제르마트 산악인 묘지의 찰스 허드슨 추모비) 이 위험은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2025년 8월, 58세의 한국인 등반가가 마터호른 정상을 밟고 내려오다 회른리 능선의 약 4000미터 지점에서 추락해 숨졌다. 160년 전 웜퍼의 팀이 로프와 함께 떨어졌던 바로 그 하산길, 그 언저리였다. 함께 등반하던 동료가 곧바로 구조를 요청해 헬기가 출동했지만, 손쓸 수 없는 상태였다. 정확한 추락 원인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고, 스위스 검찰이 조사를 이어가고 있다. 두 사고 사이에는 한 세기 반이 넘는 시간과 등산 장비의 눈부신 발전이 있었지만, 정상에 오른 뒤 안도하는 순간 방심하기 쉬운 지점이라는 사실만은 그대로였다. 마터호른의 삼각뿔 실루엣은 정복해야 할 목표처럼 보이지만, 이 산이 반복해서 증명해온 건 정상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1865년의 일곱 명도, 2025년의 한국인 등반가도 정상에는 무사히 도착했다. 그들을 위험에 빠뜨린 건 오히려 정상을 밟았다는 안도감이 스며드는 순간이었다. 산에서 진짜 집중력이 필요한 구간은 어쩌면 오르는 길이 아니라 내려오는 길일지도 모른다. 다음엔 또 어떤 산 이야기를 갖고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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