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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이 국립공원 1호가 되기 4년 전, 산에서 마지막 한 사람이 내려왔다
1967년 12월 29일, 정부는 공고 제164호로 지리산을 대한민국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했다. 그해 3월 공포된 공원법에 따라 지정된 첫 사례였고, 당시 면적은 해발 700미터 이상 지역을 중심으로 약 439제곱킬로미터였다. 지금은 경남 하동·산청·함양, 전남 구례, 전북 남원까지 3개 도 5개 시군에 걸쳐 있고, 면적은 약 440제곱킬로미터로 국내 육상 국립공원 가운데 가장 넓다. 주봉인 천왕봉은 1,915.4미터로 제주 한라산 다음으로 남한에서 두 번째로 높다. 여기까지는 안내판에 적힌 이야기다. 그런데 이 날짜에서 4년만 거슬러 올라가면 전혀 다른 장면이 나온다. 1963년 11월 12일, 지리산 내원골에서 경찰이 한 여성을 붙잡았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10년 3개월이 지난 뒤였다. 한국의 첫 국립공원이 된 산은, 전쟁의 마지막 장면이 이 산에서 끝난 지 4년밖에 되지 않은 산이었다. 이 글은 그 4년 전후의 지리산 이야기다. 어리석은 사람도 머물면 지혜로워진다는 산 지리산(智異山)을 한자 그대로 풀면 '지혜로운 이인(異人)의 산'이라는 뜻이다. 다른 풀이도 전해진다. 어리석은 사람이 이곳에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으로 달라진다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는 것이다. 신라 시대에는 다섯 곳의 큰 산, 오악 가운데 남악으로 모셨다. 이름도 하나가 아니다. 백두산의 산줄기가 한반도를 타고 흘러내려 이곳까지 이어졌다는 뜻에서 두류산(頭流山)이라 불렀고, 깨달음을 얻은 고승의 처소를 가리키는 '방장'에서 따와 방장산이라고도 했다. 한 산에 이름이 여럿 붙었다는 건, 그만큼 오랜 세월 여러 사람의 삶에 걸쳐 있던 산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500년 전에도 사람들은 이 산을 걸어서 올랐다 기록으로 남은 지리산 산행은 생각보다 훨씬 오래됐다. 1472년 8월, 함양군수였던 김종직이 14일부터 18일까지 4박 5일 동안 지리산을 유람하고 기행문 「유두류록(遊頭流錄)」을 남겼다. 이후 남효온이 「지리산일과」를, 김일손이 「속두류록」을 썼고, 1558년에는 남명 조식도 같은 제목의 「유두류록」을 지었다. 조식의 일행은 40여 명에 이르는 큰 규모였다고 한다. 조선의 선비들에게 이 산은 경치를 즐기는 곳이면서 마음을 닦는 곳이었다. 500년 전 등산기가 지금까지 남아 있는 산은 흔치 않다. 오늘 우리가 천왕봉을 향해 걷는 길 위에는 그렇게 이어져 온 발걸음이 겹쳐 있다. 이 산은 한때, 전쟁이 가장 오래 남아 있던 곳이었다 지리산에는 조금 다른 종류의 기록도 쌓여 있다. 1948년 10월 19일, 여수에 주둔하던 국방경비대 제14연대에서 여순사건(여수·순천 10·19사건)이 일어났고, 이후 군 일부 병력과 이에 합류한 무장 세력이 산악 지대로 들어가 활동을 이어 갔다. 그 활동의 본격적인 무대가 된 곳이 지리산 일대였다. 산이 그만큼 넓고 깊다는 점이 이 시기 지리산을 특별한 공간으로 만든 배경으로 꼽힌다. 활동은 한국전쟁을 거치며 이어졌다. 진압 작전을 맡았던 부대가 공식 해산된 건 1955년 7월 1일, 서남지구 전투사령부가 해산을 선언하면서였다. 이 시기 산과 산 아래 마을 사이에서 민간인들도 큰 피해를 입었다. 희생자 규모는 자료마다 차이가 커서 여기서는 숫자를 단정하지 않는다. 분명한 건 지리산이 한반도 남쪽에서 이 갈등이 마지막까지 이어진 산이었다는 사실이다. 공식 종료 8년 뒤에도, 산에는 한 사람이 남아 있었다 정순덕은 1933년에 태어났다. 1951년 2월, 남편을 찾아 겨울옷을 챙겨 지리산으로 들어갔고, 그곳에서 무장 조직에 합류했다. 작전이 공식적으로 끝난 뒤에도 그는 산에서 나오지 못했고, 1963년 11월 12일 지리산 내원골에서 경찰에 붙잡혔다. 체포 과정에서 총상을 입어 한쪽 다리를 잃었고, 대구와 대전교도소에서 23년을 복역한 뒤 1985년 8월 가석방됐다. 그는 산에서 내려온 마지막 사람으로 기록됐다. 그를 어떻게 평가할지는 지금도 의견이 갈린다. 이 글은 그 평가를 다루지 않는다. 다만 시간표만은 분명하다. 마지막 사람이 산에서 내려온 해는 1963년이고, 지리산이 국립공원이 된 해는 1967년이다. 그 사이는 4년 1개월이었다. 사람이 숨어들던 골짜기에, 지금은 곰이 산다 지금의 지리산에는 전혀 다른 주민이 늘고 있다. 2004년, 환경부와 국립공원공단이 반달가슴곰 6마리를 지리산 일대에 풀어 놓으며 복원 사업을 시작했다. 그 뒤 곰은 꾸준히 늘어, 지리산권 반달가슴곰은 2025년 12월 기준 96마리로 집계됐다. 그런데 이 숫자를 둘러싼 이야기는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먹이와 행동 범위를 고려한 지리산의 적정 개체 수는 최소 56마리에서 최대 78마리로 추정되는데, 이미 몇 해 전부터 이 수준을 넘어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곰 때문에 벌꿀 등의 재산 피해가 난 사례는 2004년부터 2025년 6월까지 594건이고, 그중 497건이 벌꿀 피해다. 전체 곰의 60퍼센트 안팎은 위치 추적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보도도 있다. 한때 사람이 숨어들던 산의 골짜기를, 이제는 곰이 채우고 있다. 이번 가을, 이 산을 걷는다면 지리산은 조용한 산이 아니다. 최근 5년(2021~2025년) 국립공원에서 안전사고로 숨진 사람은 모두 56명, 연평균 11명이다. 지리산의 부상자 수는 같은 기간 북한산, 설악산, 무등산 다음으로 많은 편으로 집계됐다. 산이 크고 코스가 길수록 준비가 부족한 산행에서 사고가 나기 쉽다. 그래도 가을 지리산을 찾는 이유는 분명하다. 천왕봉 일출은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속설이 붙을 만큼 귀하고, 능선을 따라 물드는 단풍은 이 산의 규모만큼 넓다. 노고단처럼 사전 예약이 필요한 구간도 있으니 출발 전에 국립공원공단의 안내부터 확인하는 게 좋다. 조선의 선비도, 산에서 나오지 못한 사람도, 지금 이 산을 채우고 있는 곰도 모두 같은 산줄기 위를 지나갔다. 그 길을 오늘 우리가 걷는다. 발밑의 길이 어떤 시간을 지나왔는지 한 번쯤 떠올려 보면, 같은 능선도 조금 다르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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