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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블랑 정상은 프랑스 땅일까, 이탈리아 땅일까
몽블랑(Mont Blanc)이라는 이름은 프랑스어로 그저 흰 산을 뜻한다. 에베레스트나 킬리만자로처럼 이름 자체를 둘러싼 다툼의 역사는 없다. 하지만 알프스에서 가장 높은 이 봉우리에는, 정상이 어느 나라 것인지를 두고 지금도 끝나지 않은 다툼과, 최근 몇 년 사이 부쩍 심각해진 위험이 함께 쌓여 있다. 1786년, 상금을 걸고 정상에 먼저 닿을 사람을 기다린 학자가 있었다 1760년, 제네바의 학자 오라스베네딕트 드 소쉬르는 몽블랑 정상에 처음 오르는 사람에게 상금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 약속이 이뤄진 건 26년이 지난 1786년 8월 8일이었다. 샤모니의 의사 미셸가브리엘 파카르와 크리스탈 채집꾼 자크 발마가 정상에 올랐고, 파카르는 그 자리에서 기압과 온도를 측정했다. 이 기록은 훗날 몽블랑을 알프스 최고봉으로 확정하는 근거가 됐고, 이 등정 자체는 근대 등산의 출발점으로 여겨진다. 이듬해 소쉬르 본인도 발마의 안내를 받아 열여덟 명의 가이드와 함께 정상에 올랐고, 이 과정에서 샤모니 산악 가이드라는 직업이 처음으로 자리를 잡았다. 정상에 먼저 닿은 사람과, 영웅이 된 사람은 서로 달랐다 문제는 등정이 끝난 뒤에 시작됐다. 제네바의 작가 마르크테오도르 부리는 파카르의 역할을 깎아내리고 발마에게만 공로를 몰아주려 했다. 사냥꾼 출신의 소박한 발마의 이야기가 대중에게 더 잘 팔렸기 때문이다. 파카르는 살아있는 동안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진실이 밝혀진 건 20세기 초, 등정 당일 계곡에서 두 사람을 망원경으로 지켜본 목격자, 폰 게르스도르프 남작의 여행 일기가 재발견되면서였다. 그 기록으로 파카르가 실제로 앞서 걸으며 길을 뚫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그리고 지금, 이 산에서는 전혀 다른 위기가 벌어지고 있다 2026년 여름, 몽블랑에서는 낙석이 450건 넘게 발생했다. 기후가 뜨거워지면서 정상 부근의 영구동토가 무너져내렸고, 등반로 곳곳의 바위가 그대로 쏟아졌다. 7월에는 체코 국적 등반객 두 명이 낙석에 목숨을 잃었고, 8월에도 같은 경로에서 한 명이 더 숨졌다. 현지 당국은 8월 11일부터 주요 등반로에 있는 구테 산장과 테트루스 산장을 잇달아 폐쇄했다. 전문가들은 여름 동안 땅속으로 파고든 열기가 가을과 겨울까지 이어지며 더 큰 규모의 낙석을 부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산에서 길을 잃은 한국인들도 있었다 한국 등반가들에게도 몽블랑은 낯선 산이 아니다. 2017년에는 30대 한국인 등반객이 브렌바 지역에서 기상 악화로 조난돼 실종됐고, 2009년에도 40대 등반가가 추락해 실종된 일이 있었다. 정상까지 걸리는 시간은 짧지만, 날씨가 순식간에 뒤바뀌는 산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정상이 어느 나라 것인지는, 지금도 결론이 나지 않았다 1786년 등정 이후 국경이라는 개념으로 이 산을 나누려는 시도가 여러 차례 있었다. 1860년 토리노 조약이 국경선을 정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프랑스 지도는 정상을 프랑스 영토로 그리고 이탈리아 지도는 국경이 정상을 가로지른다고 그린다. 근대 등산이 시작된 산의 꼭대기가, 지도 위에서는 아직도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땅으로 남아 있는 셈이다. 몽블랑은 그렇게 여러 겹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누가 먼저 올랐는지를 두고 다퉜던 산, 국경조차 매듭짓지 못한 산, 그리고 지금은 기후 앞에서 스스로 무너져내리고 있는 산이다. 그 위를 걷는 일은 240년 전 두 남자가 걸었던 길을 되짚는 일이기도 하고, 지금 이 순간 바뀌고 있는 산의 모습을 직접 확인하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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