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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3454미터, 유럽에서 가장 높은 곳엔 라면 냄새가 난다
스위스 베른 알프스에 나란히 선 세 봉우리, 아이거·묀히·융프라우 중 가장 높은 건 융프라우다. 이름은 독일어로 처녀, 아가씨라는 뜻이다. 눈으로 뒤덮인 봉우리가 베일을 쓴 여인처럼 보여서 붙었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지만, 실제 유래는 조금 더 소박하다. 융프라우 북쪽 사면을 마주보는 알프스 목초지 벵엔알프의 옛 이름이 "처녀들의 산"이었는데, 그 땅의 오랜 주인이 인터라켄 수녀원이었던 데서 나온 이름이라는 설명이 정설로 통한다. 그런데도 지역 주민들 사이에는 훨씬 낭만적인 이야기가 함께 전해진다. 융프라우가 구름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날이 많은 건 수줍은 처녀가 얼굴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고, 옆에 선 아이거는 오래전부터 이 처녀를 짝사랑해왔지만 둘 사이에 선 묀히가 한 번도 둘을 만나게 해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세 봉우리의 이름을 나란히 놓고 보면 아이거(도깨비)·묀히(수도승)·융프라우(처녀)가 되니, 등반가들 사이에서는 수도승이 도깨비로부터 처녀를 지키고 서 있는 형상이라는 농담도 오간다. 융프라우가 처음 사람의 발자국을 허락한 건 1811년 8월 3일이었다. 스위스 아라우 출신의 마이어 형제, 요한 루돌프와 히에로니무스는 나흘 전 집을 나서 그린델발트를 거쳐 왈리스주까지 돌아가는 먼 길을 택했다. 뢰치탈에서 샤무아 사냥꾼 두 명, 요제프 보르티스와 알로이스 폴커를 가이드로 고용한 이들은 알레치 빙하를 타고 올라 로탈호른을 거쳐 정상에 올라섰다. 알프스에서 4000미터가 넘는 봉우리에 사람이 오른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아무도 이들이 정말 정상까지 갔다는 걸 믿어주지 않았다. 증인도 없고, 정상에서 뭘 봤는지 설명해도 다들 고개를 저었다. 결국 이듬해인 1812년, 요한 루돌프의 아들 고틀리프가 같은 가이드들과 함께 똑같은 길을 다시 올라 아버지와 삼촌의 기록이 사실이었음을 증명해야 했다. 최초 등정자가 자기 조카에게 재검증을 부탁해야 했던, 등반사에서도 드문 사례로 남아 있다. 융프라우가 대중에게 활짝 열린 건 그로부터 한 세기 가까이 지난 뒤였다. 스위스 사업가 아돌프 구이어첼러는 1893년 융프라우 근처 봉우리를 오르다가, 아이거와 묀히 산허리를 뚫고 융프라우요흐까지 철도를 놓겠다는 구상을 떠올렸다. 관광객이 등반 없이도 기차를 타고 유럽에서 가장 높은 곳까지 갈 수 있게 하겠다는 계획이었다. 1896년 착공한 이 공사는 원래 예상보다 두 배 넘는 비용과 16년이라는 시간을 잡아먹었다. 구이어첼러는 완공되는 모습을 끝내 못 본 채 1899년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후손들이 뜻을 이어받아 공사를 계속했다. 1912년 마침내 개통한 융프라우철도는 해발 3454미터, 유럽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기차역 융프라우요흐를 만들어냈다. 지금은 "Top of Europe"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산악열차를 타고 만년설 위에 서 볼 수 있는 세계적인 관광지가 됐다. 이 역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경 한가운데에는 알레치 빙하가 흐른다. 길이 20킬로미터, 면적 79제곱킬로미터로 알프스 전체를 통틀어 가장 큰 빙하다. 얼음의 총량은 무려 100억 톤에 달한다. 2001년 유네스코는 융프라우와 알레치 빙하를 아우르는 이 일대를 알프스 지역 최초의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했고, 2007년에는 보호 구역을 더 넓혔다. 수백 종의 고산 동식물이 살아가는 생태계이자, 지난 150년간 기후 변화로 얼음이 줄어드는 모습을 가장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는 현장이기도 하다. 융프라우요흐에 서면 한쪽으로는 마이어 형제가 처음 올랐던 봉우리가, 다른 한쪽으로는 이 거대한 얼음 강이 함께 펼쳐진다. 그런데 정작 이곳을 찾는 한국인 관광객들 사이에서 융프라우요흐는 조금 다른 이름으로 통한다. 바로 "정상 라면"이다. Top of Europe 매점에서 파는 컵라면, 그중에서도 신라면이 압도적인 인기를 끌면서 생긴 별명이다. 만년설 아래 통유리창 너머로 알레치 빙하를 내려다보며 뜨거운 라면 국물을 후루룩 마시는 장면은 이제 한국인 여행객들 사이에서 거의 필수 인증샷이 됐다. 한국인에게는 익숙한 냄새가 반갑고, 외국인 관광객에게는 낯선 매운 향이 신기해서 매점 앞은 늘 줄이 길다. 유럽에서 가장 높은 기차역까지 100년도 더 된 철도를 타고 올라가, 정작 그 자리에서 다들 라면 냄비를 붙잡고 있는 풍경은 구이어첼러도, 마이어 형제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수녀원 소유의 목초지에서 시작된 이름이 낭만적인 짝사랑 전설로 부풀려지고, 증명조차 힘들었던 첫 등정이 한 세기 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기차역으로 이어지고, 그 종착역이 지금은 라면 냄새로 유명해진 곳. 융프라우는 이렇게 이야기가 몇 겹으로 쌓인 산이다. 정상까지 걸어 올라가지 않아도, 기차를 타고 앉아서 유럽의 지붕에 도착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산이기도 하다. 다음엔 또 어떤 산 이야기를 갖고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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