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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산은 원래 세계유산이 될 자격이 없었다
해발 3776미터, 일본에서 가장 높은 이 산은 우표에도 여권 디자인에도 라멘집 벽화에도 등장한다. 정작 "후지산"이라는 이름이 어디서 왔는지는 지금도 정설이 없다. 가장 널리 알려진 설명은 헤이안 시대 설화집 다케토리 이야기에 나온다. 달로 돌아가는 카구야히메가 남기고 간 불로불사의 약을, 슬픔에 잠긴 왕이 신하들에게 시켜 나라에서 가장 하늘과 가까운 산 정상에서 태워 없애게 했다는 이야기다. 그 뒤로 이 산은 "불사(不死)의 산", 후시노야마라 불리기 시작했고 세월이 흐르며 지금의 富士山이라는 한자 표기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무지개를 뜻하는 옛말에서 왔다는 설도 있지만 어느 쪽이 맞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죽지 않는 약을 태워 없앴다는 산 치고, 이 산 자체는 그 뒤로 훨씬 파란만장한 역사를 갖게 됐다. 여신이 산다는 산 후지산이라는 이름과 별개로, 일본 사람들에게 이 산은 오래전부터 신 그 자체였다. 전국의 센겐 신사에서 모시는 신은 벚꽃과 개화를 상징하는 여신 코노하나사쿠야히메다. 신화에 따르면 그는 남편의 의심을 받자 스스로 불타는 산실에 들어가 그 불길 속에서 무사히 아이를 낳아 결백을 증명했다고 전해진다. 불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생명력, 그것이 화산의 수호신에게 주어진 이야기다. 여성에게 등반이 오랫동안 허락되지 않았던 시절, 오르지 못하는 여성과 노약자를 위한 대안도 함께 생겨났다. 에도 시대 사람들은 도쿄 곳곳에 후지즈카라는 작은 인공 언덕을 쌓아 올렸다. 실제 후지산에서 가져온 용암과 흙으로 빚은 이 미니어처 언덕에 오르면 진짜 후지산을 오른 것과 같은 영적 효험이 있다고 믿었다. 지금도 도쿄 시내 신사 몇 곳에는 이 후지즈카가 남아 있어, 진짜 산에 오르지 못했던 사람들의 마음을 짐작하게 한다. 여자가 오르면 안 됐던 산 후지산은 오랫동안 오르는 산이라기보다 우러러보는 산이었다. 헤이안 시대부터 이 산은 슈겐도라는 산악 수행 신앙의 중심지였고, 수행자들은 정상에 오르는 행위 자체를 득도의 과정으로 여겼다. 문제는 이 신성한 산에 여성은 얼씬도 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여자가 후지산에 오르면 재앙이 닥친다는 금기가 에도 시대 내내 이어졌다. 그런데 이 금기에 정면으로 도전한 이들이 있었다. 후지코라 불리는 재가 신앙 집단으로, 무사나 승려가 아닌 평범한 서민들이 스스로 조직을 꾸려 후지산을 참배하고 등반했다. 이들 사이에서 신분과 성별을 가리지 않고 오를 수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조금씩 커졌고, 실제로 몰래 정상까지 오른 여성의 기록도 남아 있다. 금기는 1868년 메이지 유신과 함께 공식적으로 풀렸다. 지금은 매년 수십만 명이 국적과 성별 관계없이 이 산을 오르지만, 불과 150여 년 전만 해도 인구의 절반에게는 넘볼 수 없는 산이었다. 그날, 생중계 화면에서 그가 사라졌다 2019년 10월, 한 남성이 개인 인터넷 방송으로 후지산 등반 실황을 중계하고 있었다. 그가 오른 스바시리 루트는 이미 전년도 9월부터 적설로 등반이 금지된 구간이었다. 화면 속 그는 정상 부근 눈길이 미끄럽다고, 손이 저릴 만큼 춥다고, 핫팩을 챙겨 왔어야 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화면이 흔들리더니 그대로 미끄러져 사라졌다. 시청자 중 한 명이 곧바로 신고했고, 이틀 뒤 시즈오카현 경찰이 해발 2700미터 지점에서 그로 추정되는 시신을 수습했다. 사고 자체는 후지산에서 드물지 않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화면에 고스란히 남았다는 점에서 이 사고는 유독 오래 회자됐다. 산이 얼마나 조용히, 그리고 순식간에 사람을 삼킬 수 있는지를 보여준 장면이었다. 밤새 걸어 일출을 보는 무리수 후지산 사고 대부분은 실력 부족이 아니라 무리한 일정에서 비롯된다. 일본에서는 이를 탄환 등산이라 부른다. 산장에서 쉬지 않고 밤새 걸어 정상에서 일출을 본 뒤 곧바로 내려오는 방식이다. 왕복 10시간 안팎을 거의 잠 없이 걷다 보니 8부 능선을 넘는 순간부터 고산병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이 속출하고, 기온이 영하 가까이 떨어지는 밤에는 저체온증으로 쓰러지는 사고도 잦다. 접근성이 워낙 좋다 보니 도쿄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오려는 사람들이 이 방식을 택하는 경우가 많은데, 정작 후지산은 표고차 1400미터를 넘게 오르는 결코 만만한 산이 아니다. 여기에 오버투어리즘까지 겹쳤다. 4개 등산로 중 도쿄에서 가장 가까운 요시다 루트로 등산객이 몰리면서 쓰레기 투기와 정체가 심각해지자, 야마나시현은 2024년부터 1인당 2000엔의 통행료를 걷고 요시다 루트 하루 등산객을 4000명으로 제한하기 시작했다. 2025년부터는 사전 예약이 사실상 필수가 됐다. 누구나 오를 수 있는 산이라는 이미지와, 그래서 더 위험해진 산이라는 현실이 함께 존재하는 셈이다. 사실은 그저 잠들어 있을 뿐이다 등산객들이 사진을 찍는 이 완만한 원뿔형 산은 지질학적으로는 잠들어 있는 활화산일 뿐이다. 지난 5600년 동안 후지산은 약 180차례 분화했다. 평균 30년에 한 번꼴이다. 가장 최근이자 마지막 대규모 분화는 1707년 에도 시대의 호에이 분화였다. 그 뒤로 약 300년째 잠잠하다. 인간의 시간으로는 긴 침묵이지만, 화산학자들은 오히려 그 침묵이 불안한 신호라고 말한다. 후지산과학연구소 소장은 후지산이 아직 젊은 화산이라 언제 활동을 재개해도 이상하지 않다고 밝힌 바 있다. 일본 정부가 진행한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1707년과 같은 규모의 분화가 지금 일어나면 화산재가 3시간 만에 수도권까지 도달한다. 도쿄 도심에는 최대 10센티미터, 가나가와 일부 지역에는 30센티미터 넘는 화산재가 쌓일 수 있다는 예측도 나왔다. 화산재가 0.5밀리미터만 쌓여도 철도가 멈추고 10센티미터를 넘으면 도로 통행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항공기는 엔진에 화산재가 빨려 들어가면 그대로 멈출 위험이 있다. 사람들이 사랑하는 저 완벽한 원뿔은 언제 다시 깨어날지 아무도 확신할 수 없는 휴화산이다. 숲이 삼킨 소문들 후지산 북서쪽 기슭에는 아오키가하라라는 울창한 숲이 펼쳐져 있다. 일본에서는 흔히 주카이, 우리말로 나무의 바다라 부른다. 이 숲의 시작은 서기 864년, 후지산이 대규모로 분화하며 흘려보낸 용암류였다. 당시 그 자리에는 커다란 호수가 있었는데 용암이 대부분을 메워버렸고, 남은 물이 지금의 쇼지 호가 됐다. 그 굳은 용암 위로 수백 년에 걸쳐 나무가 뿌리를 내리면서 지금 같은 빽빽한 원시림이 만들어졌다. 이 숲을 둘러싼 가장 유명한 소문은 나침반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땅속 화성암에 자철석 성분이 섞여 나침반 바늘이 1~2도 정도 미세하게 흔들리는 건 사실이지만, 방향을 완전히 잃을 정도는 아니다. 오히려 이 숲이 위험한 진짜 이유는 나침반이 아니라 지형에 있다. 용암 지대 특유의 울퉁불퉁한 바닥과 빽빽하게 우거진 나무가 시야와 방향 감각을 동시에 무너뜨린다. 이 숲이 지금 같은 어두운 이미지를 갖게 된 건 1960년, 소설가 마쓰모토 세이초가 이 숲을 배경으로 한 소설 파도의 탑을 발표하면서부터다. 소설이 큰 인기를 끌자 실제로 이곳을 찾는 사람이 늘었고, 이후로도 비슷한 이야기가 반복되며 숲은 원치 않는 명성을 얻었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정식 탐방로 곳곳에 순찰과 CCTV가 늘었고 통신 기지국도 설치돼 조난 위험도 크게 줄었다. 숲 가장자리에는 산책로와 캠핑장이 정비돼 있고, 동쪽과 서쪽 끝에는 용암이 만든 바람동굴과 얼음동굴이 있어 지금은 오히려 가족 단위로 즐기는 트레킹 명소로도 알려져 있다. 같은 숲이 시대에 따라 완전히 다른 얼굴로 불린 셈이다. 더러운 산이 유산이 된 사연 정작 후지산을 지금의 위상으로 끌어올린 결정타는 화산도 신앙도 아니었다. 2003년 일본 정부는 후지산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하려 했다. 결과는 탈락이었다. 화산으로서 세계적으로 특별히 독자적인 가치를 인정받기 어렵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결정적인 건 산 곳곳에 버려진 쓰레기 문제였다. 실제로 당시 외신은 후지산을 세계에서 가장 더러운 산 중 하나로 꼽기도 했다. 일본은 전략을 완전히 틀었다. 화산으로서의 독자성을 내세우는 대신, 수백 년간 이어져 온 산악 신앙의 대상이자 우키요에를 비롯한 수많은 예술 작품에 영감을 준 문화적 상징이라는 점을 앞세워 2012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다시 신청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2013년 6월 유네스코는 후지산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 자연유산 후보로는 떨어지고 문화유산으로 살아남은, 세계유산 등재 사례 중에서도 드문 경우였다. 문제는 등재 이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2023년에는 여전한 쓰레기와 인파 문제로 세계유산 지위가 취소될 수 있다는 경고까지 나왔다. 2024년부터 시작된 통행료와 인원 제한은, 결국 이 산이 유산 자격을 지키기 위해 뒤늦게 치르고 있는 대가인 셈이다. 카구야히메의 불사약을 태웠다는 전설의 산은, 정작 스스로는 몇 번이고 위기를 넘기며 지금의 이름값을 지켜왔다. 불 속에서 아이를 낳은 여신, 여인금제를 뚫고 오른 사람들, 화면 속에서 사라진 한 사람, 밤새 걸어 일출을 보려는 사람들, 소문만큼 위험하지 않았던 숲, 그리고 더러운 산이라는 오명까지. 완벽한 삼각형 실루엣 안에는 이 모든 이야기가 겹겹이 쌓여 있다. 다음엔 또 어떤 산 이야기를 갖고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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