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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열 손가락 없이 14좌를 완등하고, 하루 뒤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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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열 손가락 없이 14좌를 완등하고, 하루 뒤 사라졌다

카라코람 산맥, 파키스탄과 중국 국경에 걸쳐 있는 이 산은 세계에서 열두 번째로 높다(8,051미터). 1892년 영국의 탐험가 마틴 콘웨이가 이 산을 관찰하고 "브로드피크"라는 이름을 붙였다. 스위스 알프스의 브라이트호른, 독일어로 "넓은 뿔"이라는 산을 떠올리며 지은 이름이라고 전해진다. 1.5킬로미터 넘게 길게 이어지는 평평한 정상 능선이 실제로 그 이름값을 한다. 그전까지 이 산도 카라코람의 다른 봉우리들처럼 그냥 번호로 불렸다. 1856년 인도 대삼각측량국의 측량기사 T.G. 몽고메리가 카슈미르에서 카라코람 산맥을 관측하며 각 봉우리에 K(카라코람)로 시작하는 임시 번호를 매겼는데, 이 산은 그때 K3이었다. 이웃한 K2와 달리 이 번호는 정식 이름으로 굳어지지 못했다. 발티족 사이에서는 팔찬 캉그리, "넓은 산"이라는 뜻의 이름으로도 불린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 이름이 실제로 오래전부터 현지에서 써온 것인지 후대에 영어 이름을 그대로 옮긴 것인지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최초 등정, 산소통도 포터도 없이 이 산이 사람의 발자국을 처음 허락한 건 1957년 6월 9일이었다. 오스트리아 원정대의 마르쿠스 슈무크, 프리츠 빈터슈텔러, 쿠르트 딤베르거, 헤르만 불 네 사람이 정상에 섰다. 이 등정이 특별했던 이유는 방식에 있다. 산소통도, 짐을 날라줄 고소 포터도 없이 네 사람이 스스로 장비를 짊어지고 오른, 8000미터급 봉우리 최초의 알파인 스타일 등정이었다. 대규모 원정대가 캠프를 여러 겹 세우고 물자를 릴레이로 실어 나르던 시절에, 이들은 최소한의 인원과 장비만으로 산을 상대했다. 네 명 전원이 정상을 밟았다는 것도 이례적이었다. 이 등정으로 헤르만 불은 서로 다른 두 개의 8000미터봉을 초등한 최초의 인물이 됐다. 4년 전인 1953년, 그는 낭가파르바트를 단독으로 초등하며 이미 전설이 된 산악인이었다. 등정 3주 뒤,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불은 이 산에서 내려온 지 3주도 지나지 않아 목숨을 잃었다. 6월 28일, 그는 동료 딤베르거와 함께 근처의 초골리사 봉우리를 새벽 5시에 나서 오르기 시작했다. 폭풍이 몰아치자 두 사람은 해발 7300미터 부근에서 등반을 포기하고 하산을 결정했다. 화이트아웃 속에서 두 사람은 로프도 묶지 않은 채 능선을 걷고 있었다. 딤베르거는 발밑에서 미세한 진동을 느끼고 본능적으로 능선 반대쪽으로 몸을 던졌다. 몸을 일으킨 그의 눈에 들어온 건, 자기 발자국과 불의 발자국이 나란히 이어지다가 무너져 내린 눈처마 끝에서 함께 끊겨 있는 광경이었다. 불은 그대로 북벽 아래로 900미터 가까이 추락한 것으로 추정된다. 시신은 지금까지도 발견되지 않았다. 향년 32세, 그가 세계 최초로 서로 다른 8000미터봉 두 곳을 초등한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은 때였다. 넓은 만큼 위험한 능선 이 산의 이름은 등반가들에게 또 다른 의미의 함정이기도 하다. 정상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워낙 길고 평평해서, 해발 8028미터 지점의 바위 돌출부를 진짜 정상으로 착각하는 등반가가 끊이지 않는다. 이곳을 가짜 정상이라 부른다. 산소 부족과 탈진으로 판단력이 흐려진 상태에서, 눈앞의 봉우리가 정상처럼 보이면 그대로 발길을 돌리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뒤늦게 착각을 깨닫고 이미 늦은 시간에 무리하게 진짜 정상까지 밀어붙이는 사람도 있다. 두 경우 모두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1957년 첫 등정 이후 지금까지 20명이 넘는 등반가가 이 산에서 목숨을 잃었고, 그중 상당수가 정상보다 하산길에서 사고를 당했다. 2013년에는 여러 원정대가 한꺼번에 몰린 시즌에 사고가 잇따르며 큰 인명 피해를 냈다. 화려한 이름과 달리, 넓은 능선은 등반가를 반기는 길이 아니라 판단을 흐리는 길이었다. 열 손가락 없이 오른 마지막 8000미터 이 산에서 벌어진 가장 최근의, 그리고 한국인에게 가장 아픈 사고는 2021년에 있었다. 김홍빈 대장은 1991년 북미 최고봉 데날리에서 동상을 입어 열 손가락을 전부 잃었다. 손가락이 없는 손으로도 그는 등반을 포기하지 않았다. 장비를 손목에 결박하고 자일을 다루는 법부터 다시 익혀가며 산을 올랐다. 2021년 7월 18일, 그는 이 산의 정상에 섰다. 세계 8000미터급 14개 봉우리를 모두 오른, 장애를 가진 산악인으로는 세계 최초의 기록이었다. 그러나 완등의 기쁨은 하루를 넘기지 못했다. 다음 날인 7월 19일, 그는 캠프4 인근 해발 7900미터 지점을 하산하다 크레바스로 추락해 실종됐다. 산악인이 이끄는 구조대가 급파됐고, 중국 대사관은 헬기 두 대를 북쪽 베이스캠프로 보내 수색을 도왔다. 파키스탄과 중국 양국이 나선 구조에도 그는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그가 완등을 확인시켜 준 정상 사진 한 장만이 마지막 흔적으로 남았다. 그해 12월, 대한민국 체육유공자로 선정돼 청룡장이 추서됐다. 그리고 2년 뒤, 법원은 그가 속했던 산악회가 정부의 수색 비용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완등의 순간과 실종의 순간 사이, 겨우 하루였다. 넓은 능선이라는 이름 그대로, 이 산은 정상에 서는 순간까지는 비교적 순한 얼굴을 보여준다. 문제는 늘 그다음이었다. 알파인 스타일이라는 새로운 방식을 증명하고 내려오던 헤르만 불도, 장애를 뛰어넘어 14좌를 완성하고 내려오던 김홍빈도, 정상을 밟은 뒤 하루를 넘기지 못했다. 이름처럼 그저 넓기만 한 줄 알았던 능선 위에서,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시대에 같은 방식으로 이 산에 마지막 발자취만 남기고 떠났다. 다음엔 또 어떤 산 이야기를 갖고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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